유네스코와 무형유산정책
1. 근대의 문화적 차별과 유네스코의 대응
근대 문화 차별의 유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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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비서구: 서구 문화의 '합리성'과 '우월성'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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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여성: 여성 문화의 가치 평가절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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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민속: 민속 문화를 '낙후된 것'으로 취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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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형/무형: 무형문화유산의 중요성 간과
유네스코의 주요 정책 대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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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세계문화 및 자연유산 보호협약 (유형문화유산 중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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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문화 다양성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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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현재: 문화 상대주의 개념 확립 - 모든 문화의 고유 가치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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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정책 변화의 흐름:
• 1946년 창립: '인류의 보편성' 강조, 다양성은 극복 대상, '통합'이 핵심어
• 1960년대 중반: '보존과 개발' 중심으로 전환, 1972년 세계유산협약 채택
• 1980년대 중반: '문화의 다양성' 개념 중시, 2003년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탄생
•
두 협약의 차이점:
• 1972년 협약: 유산의 보전과 개발, 진정성/완전성/보편적 가치 중시
• 2003년 협약: 문화적 다양성, 공동체 정체성/지속성, 창조성 기여 중시
2. 유네스코 세계무형문화유산
유네스코(UNESCO: United Nations Educational, Scientific and Cultural Organization)는 국제 교육·문화·과학 협력기구이다. 1972년에 세계 문화·자연유산 보호제도(World Heritage Convention)를 수립했다. 이 제도는 만리장성, 피라미드와 같은 유형 유산과 자연환경에 초점을 맞추어 세계유산으로 등록·보호했다.
이는 유네스코의 가장 성공적인 프로젝트 중 하나였으나, 노래, 춤, 의례 같은 무형유산은 포함하지 않았다. 이에 많은 회원국들이 전통문화와 민속 보호제도 설치를 요구했고, 1989년 유네스코 총회에서 "전통문화와 민속에 대한 보존 장치에 관한 권고안"이 채택되었다.
1.
1989년의 전통문화와 민속에 대한 보존 장치에 관한 권고안(Recommendation on the Safeguarding of Traditional Culture and Folklore)
이 권고안은 "민속은 집단의 정체성을 나타내며, 집단(가족, 직업군, 국가, 지역, 종교, 종족집단 등)에 의해 보존되어야 한다"고 명시했다. 각국은 다음과 같은 연구를 수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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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및 국제적 차원의 등록을 포함한 국가 단위 민속 목록 기관 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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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속 확인·녹음 작업 및 자료 카탈로그 작성, 다양한 기관의 분류방법 간 호환성 확보
•
국제적으로 사용 가능한 민속의 일반 개요, 포괄적 등록, 지역 민속 분류를 포함한 표준 민속 유형 개발
유네스코의 이러한 조치는 회원국들에게 무형문화유산의 확인, 보호, 전승, 보존 및 국제협력을 촉구했다. 특히 전쟁이나 분쟁으로 위험에 처한 무형문화유산 보호를 위한 조치와 협력을 강조했다.
이후 회원국들의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인식이 크게 높아졌다. 무형문화유산은 민족이나 부족 정체성의 상징일 뿐 아니라, 세계화로 인해 전통문화가 서구 문화에 밀려 빠르게 사라지는 상황에 대응하기 위함이었다. 유네스코는 무형문화유산에 대한 대중 인식 제고와 보존·전승을 위한 다양한 사업을 추진해왔다.
유네스코는 회원국들에게 무형문화보존 훈련 프로그램, 목록 작성, 소수민족·원주민 무형문화유산 보존·활성화, 전통문화축제 조직, 아프리카 언어 보존 다국적 조직, 민속자료 네트워크 구축, 민족음악 CD 발간, 지침서 개발, 사라져가는 언어 지도 출판, "상업적 요인으로부터 민속과 전통문화 보호방안" 및 "도덕과 전통문화" 등의 책자를 발간했다.
2.
인간문화재제도
가장 획기적인 사업 중 하나는 1993년 제142차 집행위원회에서 "인간문화재(Living Human Treasures)" 제도 설치를 촉구한 것이다. 이는 한국의 인간문화재 제도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한국은 1964년부터 무형문화재 보존정책과 보유자 제도를 시행해왔다. 한국의 제안으로 약 50여 개국이 도입 의사를 밝혔다. 일본에도 "인간국보(Living National Treasures)"라는 유사한 제도가 있으나, 한국의 "인간문화재"가 국가 단위뿐만 아니라 특정 종족·지역 단위의 무형유산을 포괄할 수 있어 더 적합한 개념으로 평가받았다.
3.
구전 및 무형문화유산 걸작(Masterpieces of the Oral and Intangible Heritage of Humanity)
1989년 권고안의 한계를 인식한 유네스코는 1997년 제29차 총회에서 인류구전문화 걸작 선정 제도 창설에 합의했다. 집행위원회는 구전과 무형문화유산을 함께 고려하자는 의견을 채택해 1998년 제155차 회의에서 "인류 구전 및 무형문화유산 걸작 선정" 규약을 채택했다.
이 제도를 통해 2001년 19개, 2003년 28개, 2005년 43개 등 총 90여 개의 세계무형문화유산이 선정되었으며, 이는 무형문화유산협약 마련에 큰 역할을 했다.
(1) 목적 및 정의
이 규약은 "인류 구전 및 무형문화유산 걸작 선정" 목적을 다음과 같이 정했다:
•
각 정부, NGO, 지역사회가 공동유산이자 독특한 문화인 구전 및 무형문화를 확인·보존·계승·발전시키도록 장려한다. 개인, 단체, 기관, 조직이 유네스코 목적에 부합하도록 문화유산을 관리·보존·발전시키기 위해 제정되었으며, 1989년 권고안과 일치한다.
또한 구전 및 무형문화유산에 대해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
문화집단의 전통에 기반하여 창조된 것으로, 집단이나 개인에 의해 표현되며 해당 집단의 문화·사회 정체성을 반영하고 그 구성원들에게 인정받는 것이다. 언어, 몸짓 등으로 전승되며, 언어문학, 음악, 춤, 놀이, 신화, 의례, 관습, 공예, 건축 등의 예술품과 전통적 대화·정보를 포함한다.
1.
선정기준에서 "걸작(Masterpiece)"은 서구적 고급문화 기준이 아닌 인류학적 개념을 도입했다. "지역민들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며, 같은 문화권, 인접 지역, 세계적으로 유일한 문화유산"이라는 개념을 적용했다.
2.
"구전 및 무형유산" 정의에 관해, 고정된 것이 아닌 사람에 의해 행해지는 "살아있는 전통(living tradition)"으로 보아 변화 과정으로 정의했다. 이는 한국 무형문화재의 '원형' 개념과는 다른 접근이다.
3.
또한 유네스코 정신과 1948년 UN "세계인권선언"에 저촉되지 않아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 여성 억압 관습이 논란이 된 사례가 있었으나, 여성 참여 배제(한국 종묘제례처럼)와 구분했다. 또한 전통 노래 연행 시 약물 사용처럼 유네스코 정신에 위배되는 사례도 선정에서 제외되었다.
4.
무형문화유산협약 통과 및 발효
2003년 10월 17일, 제32차 유네스코 총회에서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International Convention to Safeguard Intangible Cultural Heritage)"이 통과되었다. 이로써 기존 권고사항에 불과했던 무형문화유산 보호가 법적 효력을 갖게 되어 회원국들의 협조와 감시 하에 보호·보존될 수 있게 되었다.
이 협약은 30개국의 비준이 필요했는데, 2006년 1월 20일 루마니아가 30번째로 비준함으로써 3개월 후인 4월 20일부터 정식 발효되었다.
협약에서 '무형문화유산'이라 함은 '공동체, 집단, 때로는 개인이 자신의 문화유산의 일부로 보는 관습, 표상, 표현, 지식, 기술 및 이와 관련한 도구, 물건, 인공물 및 문 화적 공간'을 말한다. 세대 간 전승되는 무형문화유산은 환경에 대한 대응, 자연과의 상호작용, 그리고 역사 속에서 공동체 및 집단에 의해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정체성 및 지속성을 제공함으로써 문화적 다양성과 인류의 창조성을 증진한다'고 정의하고 있다(제2조 제1항).
협약의 정의에 명시된 무형문화유산의 범위는 다음과 같다(제2조 제2항).
1.
구전에 의한 전승 및 표현(무형문화유산의 전달수단으로서의 언어를 포함)
2.
공연 예술
3.
사회적 관습, 의례 및 축제 행사
4.
자연과 우주에 관한 지식과 관습
5.
전통 공예
또한, 협약은 세계유산에서 사용되고 있는 보존(conservation)이라고 하는 용어와 구별하여 '보호(safeguarding)'이라고 하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데, 무형문화유산에 있어서 보호를 지정(identification), 기록(documentation), 조사(research), 보전(preser-vation), 보호(protection), 중진(promotion), 선양(enhancement), 공식 및 비공식 교육을 포함한 전승(transmission), 다양한 측면의 활성화(revitalization) 등 유산의 생명력 (viability)을 보장하기 위한 조치로 정의하고 있다(제2조 제3항). 7)
3.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협약과 공동체성
2003년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의 의의
2003년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은 공동체를 핵심 개념으로 한다. 이 협약은 '공동체 중심'이라고 불릴 정도로 공동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협약 내에 공동체에 대한 명확한 정의는 없는데, 이는 공동체라는 개념이 다양한 맥락에서 서로 다른 의미로 사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1972년 세계유산협약이 서구 중심의 전문가들에 의해 '탁월한 보편적 가치(OUV)'를 강조했다면, 2003년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은 각 공동체가 자신의 문화 가치를 스스로 평가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는 엘리트적이고 서구 중심적이라는 비판을 받아온 기존 유산 관리 방식에서 벗어나 문화 다양성을 존중하는 접근법이다.
공동체 중심 접근법이 강조된 배경에는 1980-90년대 유산 관련 학문 분야의 패러다임 전환이 있다. 특히 2007년 유엔 원주민 권리선언(UNDRIP) 채택으로 이어진 원주민 공동체 유산 권리 인정 노력이 2003년 협약의 방향성에 영향을 미쳤다.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은 무형유산의 의미 부여, 전승, 보호, 목록 등재 과정에서 공동체, 단체, 개인의 참여를 특별히 강조한다. 협약 제15조와 운영지침 제3장 1절은 공동체가 무형유산 관련 모든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무형유산 보호란 유산의 생명력을 보장하기 위한 모든 조치(확인, 기록, 조사, 보존, 보호, 증진, 전승, 활성화)를 의미한다. 지속가능한 발전 측면에서 무형유산은 공동체의 삶에 이득이 되어야 하며, 보호를 이유로 공동체에 불필요한 간섭을 해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은 공동체를 '무형유산을 연행하고 전승하며 공유된 역사적 관계에서 비롯된 정체성과 연결성을 가진 사람들의 네트워크'로 정의한다. 집단은 특정 무형유산의 연행, 재창조, 전승에 특별한 기술과 지식을 가지고 역할을 수행하는 사람들이며, 개인은 이러한 집단 내에서 특별한 기술과 지식으로 문화 수호자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무형문화유산보호협약 제2조 제1항은 무형문화유산이 공동체와 집단이 환경, 자연, 역사와 교감하며 세대 간 전승되고 지속적으로 재창조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무형유산의 가치와 의미는 공동체가 주체가 되어 평가되어야 한다. 공동체는 자신들의 무형유산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이해하는 주체로서 단순한 참여를 넘어 핵심적인 존재로 역할해야 한다.
무형유산은 살아있는 유산으로, 공동체의 삶 속에서 실천되어야 한다. 단순히 기록이나 박물관 전시물로만 존재하는 것은 진정한 무형유산이 아니며, 공동체 안에서 끊임없이 변화, 재창조되는 것이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무형유산은 지속가능해야 한다. 이는 사회경제적 환경 조성과 위기 상황에서의 회복탄력성 강화를 통해 공동체 안에서 공동체에 의해 살아있는 유산으로 기능할 때 가능하다.
4. 유네스코의 무형문화유산정책의 의미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제도의 첫 번째 의의는 무형문화유산의 중요성 부각이다. 전통적으로 유형문화유산에 비해 중요성을 인정받지 못했던 무형문화유산의 가치를 재조명했다.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대 문화재법 도입 시 석굴암이나 남대문 같은 유형문화재만 가치 있게 여겼고, 굿이나 가면극 같은 무형문화재는 보존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이러한 무형문화유산 경시 현상은 전 세계적 추세였다.
두 번째 의의는 비서구 국가들의 문화적 정체성 보존이다. 서구 국가들(프랑스, 영국, 독일 등)은 무형문화유산제도에 무관심하거나 비협조적인 반면, 비서구 국가들은 높은 관심을 보인다. 서구 국가들은 세계유산목록(유형문화유산)에서는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지만, 무형문화유산에는 참여가 저조하다.
이러한 차이는 문화적 관점 차이에서 비롯된다. 서구에서는 사라지는 전통문화를 단순히 "옛것"으로 여기며 새로운 문화가 계속 창조된다고 본다. 반면 비서구 국가에서는 사라지는 전통문화를 '우리 것'으로, 대체되는 것은 '서구 문화'로 인식한다. 우리나라의 판소리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무형문화유산의 핵심 가치는 문화적 다양성 보존이다. 세계화 시대에 특정 지역(주로 서구) 문화의 지배를 막는 효과가 있다. 생물학적으로 다양한 종이 지구 생태계 건강에 필수적인 것처럼, 문화적 다양성은 인류 문명의 지속가능성에 필수적이다. 서구화의 영향 속에서 비서구 전통문화인 무형문화유산을 보호하는 것은 인류 문화 다양성 보존을 위한 중요한 과제이다.
무형문화유산 정책은 기존 유형문화유산 정책과는 다른 패러다임이 필요하다.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가 다른 무형문화유산보다 가치적으로 우월하다는 관점을 버리고, 모든 무형문화유산이 나름의 가치를 지닌다는 상대적 관점을 채택해야 한다. 해당 무형문화유산을 보유한 공동체의 입장에서 가치를 평가하고, '평등한 존중과 배려'라는 패러다임으로 전환이 필요하다.
5. 한국은 세계무형문화유산의 중심지
한국은 1962년부터 무형문화재 정책을 시행해 소멸 위기에 처한 다양한 무형문화유산을 보호해왔다. 세계적으로 무형문화유산 정책과 개념에 대한 이해를 갖춘 국가가 많지 않은 상황에서, 한국은 유네스코의 세계무형문화유산 정책 발전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 한국의 '인간문화재' 제도는 그 우수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가 회원국들에게 권장하는 무형문화유산 보존 모델이 되었다. 종묘제례(2001년), 판소리(2003년), 강릉단오제(2005년)의 세계무형문화유산 등재는 한국이 무형문화유산 분야의 선도국임을 국제적으로 인정받는 계기가 되었다.
유형문화유산 분야는 그동안 서구국가들의 주도하에 모든 정책이 수립되고 유지되어 왔다. 그러나 무형유산의 경우는 그렇지 않다. 아태지역이 어느 지역보다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으며 아태지역에서도 무형문화유산보존의 경험이 가장 많은 나라는 한 국과 일본이다. 일본에 비해 한국의 무형문화유산정책은 더욱 역동적이고 융통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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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아태 무형문화센터 설립(International Information and Networking center for Intangible Cultural Heritage in the Asia-Pacific Region under the auspices of UNESCO)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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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무형유산원(National Intangible Heritage Center) 2014